내가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는 건 포르투갈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곳 대형마트에선 물건 값을 계산할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두툼한 지갑에서 100유로가 넘는 현금을 선뜻 꺼내준다. 그럴 때면 ‘카드결제가 훨씬 편한데’라고 생각하곤 했다.
생활하면서 느낀 거지만 유럽 사람들은 현금 거래 빈도가 높다. 유럽중앙은행의 ‘2022년 유로존 결제 태도 연구’ 결과, 상점과 레스토랑 등에서 이뤄진 거래 건수 중 현금 지불은 59%였다. 34%가 신용·직불카드, 모바일 앱을 통한 거래는 전체의 3%에 그쳤다. 같은 해 미국 소비자 지불의 18%만이 현금인 걸 감안하면 유럽인들이 얼마나 현금거래를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금결제에 대한 인식은 나라마다 달라서 남부지역 국가(몰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와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에서 현금 사용 비중이 높았고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은 현금 지불이 50% 미만이었다.
1인당 지갑 속 현금 보유액이 100유로를 넘는 나라는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키프로스, 리투아니아, 아일랜드, 에스토니아였으며 유로존 평균은 83유로로 나타났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2만 원 정도다.
“현금은 과소비를 억제하고 기술적인 문제없이 보편적으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카드나 디지털 결제수단은 지출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어렵고 데이터가 기록돼 지불의 보안 및 기밀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현금 옹호론자들은 말한다.
우리 가게 단골손님인 한 노년의 여성분도 결제는 항상 현금으로 하는데 “카드를 쓰면 개인 정보가 다 노출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나라 현금영수증처럼 이곳에서도 물건을 살 때 개인세금식별번호를 입력하지만 이마저도 싫단다.
하지만 이런 생활패턴도 세대마다 차이가 있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카드와 모바일 앱 결제가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불 지핀 비대면 거래는 유럽에서 온라인 쇼핑과 디지털 지불로의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이와 함께 유럽중앙은행은 실물 지폐와 동전을 보완하면서 디지털 형식으로 중앙은행 통화를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유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지털 유로는 현재 조사단계를 거쳐 지난해 10월부터 2년간의 준비단계에 들어간 상황이다. 앞으로 4~5년 후 출시가 예상되는 ‘디지털 유로’가 현금을 사랑하는 유럽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궁금해진다.
코임브라(포르투갈)=장영환 통신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