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선 한국카르푸 인수전에서 현금유동성이 좋은 유통공룡 롯데쇼핑을 따돌린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봉이 김선달식 장사수완에 혀를 차고 있다.
박 회장이 수중에 쥔 돈은 카르푸 매각 대금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1조원이 넘는 매각대금은 남의 손을 빌리겠다는 계산이다. 4% 이자만 쳐도 연 560억원이 이자로 나갈 판국이다.
여기에 수천억원이 들어갈 매장 리모델링(할인마트에서 아웃렛으로) 비용과 1.5%에 불과한 한국카르푸의 영업이익률을 따져보면 이랜드의 카르푸 인수는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그동안 M&A를 통한 박성수 회장의 그룹 몸집 불리기를 보면 도박판의 올인과도 같은 모양새였다.
지난 2003년 의류업체 데코, 2004년 뉴코아, 2005년 킴스클럽 마트, 올해 의류업체 네티션닷컴, 콘도업체 삼립개발 등의 인수 때마다 인수 자금 조달 문제가 항상 거론됐다. 몸집에 비해 인수 규모가 너무 큰 데다 인수 기법도 자산유동화를 통해 빚을 내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한판의 승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성수 회장은 "우리는 아직 갈길이 멀다"며 거침이 없었다. 실제로 홍콩의 의류업체인 지오다노에 대해 눈독을 들이고 있고 향후 3, 4개 업체의 인수를 추진중이라는 것이 이랜드측의 주장이다.
박성수 회장의 이와 같은 승부사적 사업확장은 지금까지는 대박에 가까울 정도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던 뉴코아를 인수해 아웃렛으로 모양새를 바꾸더니 매출이 평균 100% 이상 늘어나는 만루 홈런을 때렸다.
지난해 이랜드 그룹은 총 매출 2조7130억원에 순이익 2364억원을 올렸다. 자산 기준 재계순위 37위(공기업 제외)의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70개가 넘는 의류 브랜드에다 아웃렛, 백화점, 수퍼마켓 등 56개의 유통매장을 가진 패션·유통 전문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1980년 박성수 회장이 이화여대 앞에 '잉글랜드'라는 구멍가게 수준의 조그만 의류매장을 연지 불과 25여년 만에 일군 수확이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출신 박성수 회장이 롯데, 신세계, 삼성 등 대 기업과 경쟁하여 유통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비결은 뭘까.
그룹 내에선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4글자로 박성수 회장의 파워를 설명한다.
그룹 관계자는 "외부에선 이랜드 그룹이 별탈 없이 승승장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기의 연속이었다"고 털어 놨다.
실제로 이랜드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존 브랜드의 신선성이 털어지면서 매출이 하락되고, 노사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6월부터 노조가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관련 노조원 4명이 구속되고 박성수 회장이 부당노동행위 등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렸다.
이런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박 회장은 특유의 기업문화를 정착시킨다. 바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믿음 중심’이라는 기독교 사상을 조직내부에 뿌리깊게 심어 넣기 시작한 것.
기독교 신앙으로 기업 문화가 통일돼 있고 대부분의 직원이 신앙적 동지로 뭉치면서 일사불란한 기업 체질 개선이 가능했다는 평이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의 업무 강도는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대기업 수준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별탈이 없는 것도 바로 신앙적 동지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있어서 '정신적 지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랜드가 짧은 기간에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은 이처럼 특유의 기업문화가 한 몫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성수 회장에게는 아직도 물음표가 많이 따라 붙는다.
그가 일련의 성공신화에도 불구하고 불법 파견근로, 불법 대체근로 등 부당노동행위를 일삼은 ‘착취형 경영인’이라는 오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게다가 8개의 계열사 중 상장사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들며 지나치게 폐쇄적이라는 지적도 강하다. 아직 20여명에 달하는 임원들의 프로필이 공개된 적이 없다는 점도 올해 매출 3조원을 바라보는 기업의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꼬집는다.
가장 큰 문제는 단단한 팀웍을 자랑하는 그룹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까르푸 인수대금과 관련하여 박성수 회장은 유통부문 계열사인 뉴코아가 2000억원, 건설업체인 이랜드월드가 1000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1조4500억원은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컨소시엄을 이뤄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계열사 한 곳이 자사가 떠맡게 된 매각 대금은 물론 향후 까르푸 인수에 따른 자사 포지셔닝에 대한 위기감으로 컨설팅 업체에 컨설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계열사들조차도 이번 까르푸 인수에 대해 위기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